3. 어린이집에서는 얌전한데 집에 오면 폭발하는 아이, 왜 부모 앞에서 더 심할까
“오늘도 정말 잘 지냈어요.”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올 때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부모는 안심합니다. 밥도 잘 먹었고, 친구와도 잘 놀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집에 도착하고 나면 전혀 다른 아이가 나타납니다. 신발을 벗으라고 했다고 울고, 손을 씻자고 하면 화를 내고, 간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짜증을 냅니다.
조금 전까지 선생님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너무 다릅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밖에서는 그렇게 잘하면서 왜 나한테만 이러지?”
아이가 부모를 만만하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훈육을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상황을 조금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왜 부모에게만 말을 안 듣는지를 묻기 전에, 아이가 집에 돌아오기까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아이에게도 하루를 버틴 시간이 있습니다
어른에게도 집은 특별한 공간입니다.
밖에서는 아무리 피곤해도 해야 할 일을 하고, 기분이 좋지 않아도 어느 정도 참고, 사람들과 약속된 규칙을 지킵니다. 그러다가 집에 돌아오면 긴장이 풀립니다.
아이도 전혀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린이집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움직입니다. 밥 먹을 시간이 있고, 낮잠 시간이 있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도 친구를 기다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고 해서 언제나 바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선생님의 안내를 따라야 하고, 다른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방법도 배워야 합니다.
두세 살 아이에게는 이것만으로도 꽤 긴 하루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 동안 유지했던 긴장이 가장 편안한 사람을 만나는 순간 풀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 오자마자 떼쓰는 아이를 보며 “밖에서는 잘하면서 왜 나한테만 그래?”라고 생각하기보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는 편이 좋다고 봅니다.
“오늘 이 아이도 자기 방식대로 하루를 꽤 열심히 보냈구나.”
이렇게 바라보면 같은 행동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원 직후에는 훈육보다 전환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집에 도착하면 부모도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신발을 정리해야 하고, 손을 씻겨야 하고, 옷을 갈아입혀야 합니다. 저녁 준비도 해야 하고 아이가 어질러놓은 물건도 치워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에게 하는 말도 자연스럽게 많아집니다.
“신발 벗어.”
“손부터 씻자.”
“옷 갈아입어.”
“거기에 두면 안 돼.”
모두 필요한 말입니다. 문제는 아이 입장에서는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또 다른 규칙과 지시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원 후 처음 20~30분 정도를 하나의 ‘전환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봅니다.
집에 오면 손을 씻고, 물을 한 잔 마시고, 배가 고프다면 간단한 간식을 먹게 합니다. 그리고 잠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꼭 무언가 특별한 놀이를 해줄 필요도 없습니다.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도 되고, 책을 펼쳐봐도 되고, 부모 옆에 가만히 있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어린이집의 하루에서 집의 하루로 넘어갈 수 있는 작은 틈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어른도 퇴근하자마자 누군가가 하루 일과를 캐묻고 계속 일을 시키면 피곤합니다.
아이도 비슷할 수 있습니다.
“오늘 뭐 했어?”도 조금 늦게 물어봐도 됩니다
아이를 만나면 부모는 하루가 궁금합니다.
“오늘 뭐 했어?”
“친구랑 잘 놀았어?”
“밥 많이 먹었어?”
“선생님 말씀 잘 들었어?”
사랑하고 관심이 있으니 묻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집에 돌아온 직후에는 질문조차 부담이 될 때가 있습니다. 아직 자신의 하루를 말로 정리하기 어려운 나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를 만났을 때 첫 번째 말을 질문으로 시작하지 않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수고했어.”
그 정도면 충분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이야기하고 싶어질 때 말하도록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조금 놀다가 갑자기 어린이집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밥을 먹다가 친구 이야기를 꺼낼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알고 싶은 시간과 아이가 말하고 싶은 시간이 꼭 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감정을 이해한다고 모든 행동을 허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의 하루를 이해해주자는 이야기를 하면 한 가지 걱정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럼 피곤하니까 떼쓰는 것도 다 받아줘야 하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육아에서 감정과 행동을 구분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화가 날 수 있습니다.
속상할 수도 있습니다.
집에 와서 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때리거나 물건을 던지는 행동까지 허용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화가 나서 컵을 던졌다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많이 힘들었구나. 그래도 컵은 던지지 않아.”
두 문장이 같이 갈 수 있습니다.
아이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부모가 지켜야 할 선을 없애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저는 오히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아이도 편안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감정을 부모가 이해해준다는 안정감과, 그래도 해서는 안 되는 행동에는 분명한 선이 있다는 예측 가능성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지 마”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려줘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하루 동안 가장 많이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하지 마”일지도 모릅니다.
뛰지 마.
던지지 마.
때리지 마.
소리 지르지 마.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필요한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빈자리가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알겠는데,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이는 아직 모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행동의 대안을 함께 알려주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컵 던지지 마”에서 끝내기보다 “컵은 식탁에 내려놓자”라고 말합니다.
“때리지 마” 다음에는 “싫으면 ‘싫어’라고 말해”라고 알려줄 수 있습니다.
“소리 지르지 마” 대신 “작은 목소리로 다시 말해봐”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훨씬 구체적입니다.
훈육은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하나씩 채워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 앞에서 더 많이 무너진다고 해서 부모가 만만한 것은 아닙니다
밖에서는 잘 지내는데 집에서 유독 감정이 많이 터지는 아이를 보면 부모 마음이 서운할 때도 있습니다.
가장 많이 돌봐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왜 가장 힘든 모습을 보여주는지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모습을 조금 다르게 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부모가 아이에게 가장 편안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 힘을 주고 있던 아이가 집에 와서 힘을 풀어놓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행동을 이것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집에서도 하루 종일 감정 폭발이 이어지고 아이와 가족 모두가 생활하기 어려울 정도라면 다른 문제는 없는지 더 세심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하지만 집에서 조금 더 많이 울고, 조금 더 많이 짜증 내고, 부모 앞에서 더 어린아이처럼 행동한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운 건가”라고 결론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가장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힘든 모습까지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요.
부모에게도 전환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다 보면 모든 책임이 부모에게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힘들었으니 이해해주고, 기다려주고, 차분하게 말하고, 좋은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부모도 하루를 보냈습니다.
일을 하고 돌아왔을 수도 있고, 다른 아이를 돌봤을 수도 있고, 집안일에 지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 역시 하원 후 가장 바쁜 시간에 아이의 떼쓰기까지 감당하다 보면 감정이 올라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도 완벽하게 침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목소리가 커졌다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아까 엄마도 너무 크게 말했어. 엄마도 많이 피곤했어.”
그리고 이어서 말하면 됩니다.
“그래도 물건을 던지는 건 안 돼.”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고 다시 관계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저는 아이에게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감정을 잘 표현하라고 가르치면서 부모는 언제나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습니다.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
어린이집에서는 잘 지내는데 집에 오면 폭발하는 아이를 만났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행동부터 고치고 싶어집니다.
왜 이러느냐고 묻고,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빨리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게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훈육보다 먼저 잠깐의 휴식일 때도 있습니다.
오늘 하원 후 20분만 한번 바꿔보세요.
질문을 조금 줄이고, 지시도 꼭 필요한 것만 하고, 물이나 간식을 챙긴 뒤 잠시 쉬게 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한마디만 해주는 것입니다.
“오늘도 수고했어.”
아이설명서는 아이의 행동을 빨리 없애는 방법보다 그 행동이 왜 나타났는지를 먼저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유를 이해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허용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유를 이해해야 어디에서는 기다려주고, 어디에서는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하는지가 조금 더 잘 보입니다.
어린이집에서는 잘 지내는데 집에만 오면 폭발하는 아이.
그 아이가 부모를 만만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가장 편한 곳에 도착해서 오늘 하루 들고 있던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보면 하원 후의 첫 30분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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