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2살 아이가 “싫어”만 해요, 정말 말을 안 듣는 걸까?
2살 아이가 무슨 말만 하면 “싫어”라고 합니다. 밥을 먹자고 해도 싫고, 옷을 입자고 해도 싫고, 씻자고 해도 일단 “싫어”라는 말부터 나옵니다.
처음에는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되다 보면 부모도 지칩니다. “우리 아이가 갑자기 왜 이렇게 말을 안 듣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두 돌 전후에 늘어나는 “싫어”를 단순한 반항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 생각과 선택하려는 마음은 빠르게 커지고 있지만, 그 마음을 충분한 말로 설명하고 조절하는 능력은 아직 함께 자라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싫어”는 부모를 밀어내기 위한 말이 아니라, 어쩌면 처음으로 자기 뜻을 분명하게 꺼내보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의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하면 싫다는 말을 못 하게 할까?”가 아닙니다.
“아이가 자기 뜻을 말하면서도, 해야 할 일을 함께 배워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는 그쪽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살 아이가 “싫어”를 많이 하는 이유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하루의 대부분을 부모가 결정합니다. 언제 먹을지, 어떤 옷을 입을지, 어디에 갈지, 언제 씻고 잘지 아이가 선택할 일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살쯤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좋아하는 것이 분명해지고, 직접 해보고 싶은 일도 많아집니다. 부모가 해주려고 하면 “내가!”라고 하고, 부모가 방향을 정하면 그 반대쪽으로 가고 싶어집니다.
마음은 빠르게 커졌는데 그 마음을 설명할 언어는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블록 놀이가 너무 재미있어서 목욕을 하러 가고 싶지 않아. 조금만 더 하고 싶어.”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부모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두 살 아이에게는 너무 긴 설명입니다.
그래서 짧고 강한 말 하나가 나옵니다.
“싫어.”
부모에게는 거부처럼 들리지만, 아이에게는 가장 쉬운 자기표현일 수 있습니다.
이 차이를 알고 있으면 같은 “싫어”도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두 돌 반항처럼 보여도 모든 것을 싸움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부모 역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옷을 입기 싫다고 하지만 어린이집에는 가야 합니다. 이를 닦기 싫다고 하지만 양치를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놀이터에서 더 놀고 싶어도 집에 가야 할 시간이 옵니다.
그래서 두 살 아이와 생활하다 보면 하루에도 여러 번 결정권을 놓고 부딪히게 됩니다.
이때 모든 상황을 “누가 이길 것인가”의 싸움으로 만들면 부모도 아이도 금방 지칩니다.
저는 먼저 한 가지를 나눠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부모가 결정해야 하는 일인가, 아이가 선택해도 되는 일인가.
옷을 입고 외출하는 것은 부모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대신 어떤 옷을 입을지는 아이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옷 입을래?”라고 물었다가 아이가 “싫어”라고 하면 다시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보다는 “파란 옷 입을래, 노란 옷 입을래?”가 더 명확합니다.
옷을 입는 것은 이미 결정된 일입니다. 그 안에서 아이가 작은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이 작은 차이가 의외로 중요합니다.
2살 아이에게 선택권을 줄 때는 두 개면 충분합니다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모든 것을 아이에게 물어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뭐 먹을래?”
“뭐 입을래?”
“언제 씻을래?”
“어디서 잘래?”
어른에게는 친절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어린아이에게는 선택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살 전후에는 선택지를 단순하게 주는 편이 좋다고 봅니다.
“사과 먹을래, 바나나 먹을래?”
“빨간 컵 쓸래, 파란 컵 쓸래?”
“곰돌이 책 읽을래, 자동차 책 읽을래?”
아이에게 세상을 모두 결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만들어놓은 안전한 범위 안에서 자기 뜻을 사용해보게 하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경험이 아닙니다.
“내 생각도 이 집에서 의미가 있구나”라는 경험입니다.
그 경험이 충분하다면 반드시 모든 일에서 부모와 힘겨루기를 할 필요도 조금씩 줄어들 수 있습니다.
선택지를 줬는데도 계속 “싫어”라고 한다면
물론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파란 옷 입을래, 노란 옷 입을래?”
했는데 아이가 말합니다.
“둘 다 싫어.”
여기서 다시 세 번째 옷, 네 번째 옷을 꺼내기 시작하면 부모도 금방 지칩니다.
선택할 기회를 충분히 줬는데 아이가 고르지 않는다면 부모가 결정해도 됩니다.
“둘 다 싫구나. 그런데 지금은 나가야 하니까 오늘은 엄마가 파란 옷으로 골라줄게.”
그리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아이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것이 아이가 만족할 때까지 모든 결정을 미룬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일은 부모가 정해줘야 합니다.
아이에게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싫어”라고 말하는 것과 행동의 선은 다릅니다
아이가 자기 마음을 표현하도록 해준다고 해서 모든 행동을 허용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싫어”라고 말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화가 날 수도 있고, 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싫다고 엄마를 때리거나 물건을 던지는 행동은 다른 문제입니다.
“씻기 싫구나.”
아이의 마음은 이렇게 받아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건을 던진다면 이어서 말해야 합니다.
“그래도 물건은 던지지 않아.”
저는 육아에서 이 두 문장이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은 말해도 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아이에게 자기표현을 가르치는 것과 세상의 경계를 가르치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둘 다 필요합니다.
아이가 “싫어”를 많이 하는 날, 부모의 “안 돼”도 한번 돌아봅니다
아이의 “싫어”가 유독 많다고 느껴지는 날에는 부모가 하루 동안 “안 돼”를 얼마나 많이 말했는지도 한번 생각해볼 만합니다.
만지면 안 돼, 올라가면 안 돼, 뛰면 안 돼, 던지면 안 돼, 거기는 가면 안 돼.
두 살 아이를 키우면 어쩔 수 없는 말들입니다. 위험을 모르고 하고 싶은 것은 많으니 부모가 막아야 할 일이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하루 종일 수많은 벽을 만나는 셈입니다.
그래서 안전이나 생활에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가끔은 그냥 해보게 두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물이 조금 흘러도 직접 컵에 따라보게 하고,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려도 신발을 혼자 신어보게 합니다. 옷의 앞뒤가 조금 이상하더라도 자기가 입어본 뒤 다시 고칠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해주면 30초면 끝날 일이 아이에게 맡기면 5분이 걸립니다.
부모에게는 느린 시간입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내가 해봤다”는 시간이 됩니다.
두 살의 “내가 할래”와 “싫어”는 어쩌면 같은 곳에서 시작되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2살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고 느껴질 때
부모가 가장 힘든 순간은 아이가 “싫어”라고 말하는 순간 자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없을 때입니다.
아침에 어린이집 갈 시간이 다 됐는데 옷을 안 입겠다고 할 때, 부모도 이미 피곤한데 씻지 않겠다며 도망갈 때는 아주 작은 거부도 크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모든 상황에서 아이 마음을 완벽하게 읽어주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부모도 지치는 날이 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엄마가 결정할게.”
라고 말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언제나 완벽하게 부드럽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매 순간 승부를 보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가 결국 옷을 입었다고 부모가 이긴 것도 아닙니다.
아이가 “싫어”라고 말했다고 아이가 이긴 것도 아닙니다.
육아를 승패로 보기 시작하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싸워야 합니다.
그 싸움에서 부모가 매번 이긴다고 해서 아이가 자기 마음을 잘 표현하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두 살의 “싫어”는 첫 번째 자기 목소리일 수 있습니다
아이설명서는 아이의 행동을 볼 때 행동 자체보다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한번 더 보려고 합니다.
두 살 아이의 “싫어”도 그렇습니다.
정말 하기 싫을 수도 있습니다.
조금 더 놀고 싶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혼자 해보고 싶은데 부모가 먼저 해버려서 속상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피곤해서 모든 것이 싫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부모가 매번 정확한 이유를 찾아낼 수는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모든 “싫어”를 부모를 향한 도전이나 버릇없는 행동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 것.
그 작은 차이만으로도 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말은 상당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자기 마음을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싫다고 말해도 괜찮아.”
그리고 그다음 문장이 있습니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일도 있어.”
저는 두 살 아이가 결국 이 두 가지를 함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에는 가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세상이 언제나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두 살의 “싫어”는 어쩌면 그 두 가지를 처음 연습하고 있는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왜 이렇게 말을 안 듣지?”라는 질문이 조금 달라집니다.
“이 아이가 지금 자기 생각을 어떻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있을까?”
아이설명서는 바로 그 질문에서부터 아이를 이해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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